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
그것을 태명이라고 하지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데 부모는 그 존재를 있는 것처럼 불러주고
존재에 대한 소망을 불어넣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태 중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모의 언어를 통해 듣고 느끼며 자라게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들의 이름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미리암(마리아)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미리암(마리아)은 예수님이 배 속에 잉태되기도 전에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창조역사를 이루시기 전에
어떤 역사를 이루시는지요.
그 분은 먼저 언어를 창조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창세기 말씀에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심으로 창조역사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깊은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엄마가 태명을 지어주듯 하나님께서는 먼저
존재에 대한 이름을 먼저 지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려면 먼저 “빛”이라는 언어를
먼저 창조하셔야 합니다.
‘빛’을 ‘빛’이라고 부르기 위해서 그 존재에 대한 ‘이름’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존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실체가 있기 전에 이미 그에 대한 명칭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이 처음으로 한 일은 이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입술’, 하나님의 ‘혀’였습니다.
하나님이 지은 ‘이름’을(하나님 속에 갖고 있던 ‘이름’) 아담은 발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존재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 전에 말씀, 언어가 먼저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언어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 머리 속에는 언어가 돌아다닙니다.
그것은 그림언어일 수 도 있고, 단어이기도 하며, 기억이기도 합니다.
소리(음악)언어이기도 하며, 밝음이나 어두움같은 명암일 수도 있고 어떤 모양의 언어일수 도 있습니다.
인간은 언어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입술’, 하나님의 ‘혀’였던 것 처럼 우리가 그 처음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천국의 회복일 것입니다.
아담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몸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빛이 있을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발현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오심을 묵상하면서
더 높고 깊은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