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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어렵다면 성실을 택하라-'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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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일본의 세계적인 경영전략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그의 책 《난문쾌답 : 답이 없는 시대 필요한 것들》에서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뿐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그의 신념은 너무나 확고해 보인다. 특히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자주 할 뿐만 아니라 변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결심’을 가장 의미 없는 행위로 여기는 것은 그의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심’이 별 의미 없는 이유는 아마도 변화의 추진력을 자기 내부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중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보통사람에게 있어서 의지력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영어학원이 잘되는 이유는 늘 사람들이 결심만 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변화를 추구할 때 자신 밖에 있는 새로운 외적인 상태에 연약한 자신을 노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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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가거나 자신의 전공과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학문에 대해서 논의하는 일,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낮 동안 번잡했던 중심가를 걸었을 때의 느낌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초기 교회공동체의 신앙인들 가운데는 사막으로 간 사람도 있었고, 로마의 순교자들이 묻힌 지하공동묘지인 카타콤 베(Catacombe)에서 기도생활에 몰두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떠나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영화 <럭키>는 잔혹한 킬러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코믹 드라마다.

형식을 보자면 새로울 것은 없다. 예상치 못한 극적인 경험을 통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변신의 드라마’적 성격을 갖고 있다.

전기에 감전된 이후 여자의 속마음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다룬 <왓 위민 원트>(2000)나 이기적인 변호사가 교통사고로 인해 평범한 가정주부로 변신하면서 벌어지는 삶의 변화와 사랑의 회복을 다룬 <미쓰 와이프> (2015)와 같이 죽음에 가까이 가는 체험을 통해 외모나 내면의 세계가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유형의 영화에 속한다.

물론 악당에서 선한 사람으로 전환이 일어나는 까 닭에 이런 장르의 영화들은 윤리적이거나 인격적인 선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역으로 해석하자면 인생을 바꾸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온 습관과 탄력에 의해 같은 인생을 반복할 뿐이며, 대중영화가 보 여주는 것처럼 인생에 변화를 주는 일은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과 같은 극적인 경험이나 사람이 뒤바뀌는 등의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야 가능할 만큼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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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남자의 착한 영화

<럭키>의 주인공이자 철두철미한 킬러로 활동하는 형욱(유해진)은 몸에 묻은 피를 닦기 위해 들른 동네목욕탕에서 그만 비누를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마침 가난한 배우지망생 재성(이준)이 형욱의 목욕탕 보관함 열쇠를 바꿔치기 하고, 열쇠가 바뀐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전 기억을 회복하지 못한 형욱은 자신이 재성이라고 착각하며 배우의 길을 가려 하고, 재성은 형욱의 호화스런 아파트에서 살며 형욱의 실체를 파악하는 한편 형욱이 제거하려던 은주(임지연)를 모니터로 지켜보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럭키>는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전우치>가 가지고 있던 역대 코미디 중 최단기간 200만 돌파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럭키>가 인생 전환을 다룬 익숙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 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의미 있게 읽혀지는 이유는 주인공 킬 러 역을 맡은 유해진이라는 배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 관객 수만 1억 명이 넘고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그의 연기 인생의 중심에는 외모와 다르게 순수한 내면과 착한 심성을 가진 캐릭터가 있었다.

<신라의 달밤>이나 <주유소 습격사건>과 같은 영화에서 건달과 조폭 전문 조역으로 출발했던 그는 <타짜>에 와서는 비록 어둠의 세계에 있지만 선한 인간미를 잃지 않는 매력을 자신의 독특한 개성으로 확정지었다.

<타짜>의 고광렬은 그가 주인공이 아닌 2 인자로서 영웅보다는 약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신의를 지키는 인물이다.

거침없는 입담과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미지는 범죄자나 악당 같아 보이지만 결코 악할 수 없는, 즉 내면의 선함을 감추고 다니는 사이비 악당의 모습에 다름없다.

그가 <럭키>에 녹아들 수 있는 이유도 유해진이라는 캐릭터와 완벽히 일치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의 극적 반전이 일어나는 끝에 가서야 비로소 관객들은 이 영화가 인생전환을 다룬 장르영화로부터 한발 앞서 나가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악당 같아 보이지만 악당이 될 수 없 는 유해진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전문 킬러가 배우 역할로 나설 때 어설픈 모습처럼 유해진은 완벽한 킬러로 등장할 때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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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약하고 어설프며 과장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선함을 숨겨두는 그의 필모그래피 속 이미지는 관객들에게는 친밀감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가며 삶의 변화를 추구하지만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마는 까닭이다. 조각상처럼 잘 생기고 완벽한 몸매를 뽐내며 영웅의 이미지를 스크린을 통해 뿜어내는 배우에게 관객은 경외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친밀감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그가 <럭키>를 통해 거둔 성공은 한국영화의 발전에 크게 기 여할 전망이다. 영화나 우리 모두는 성공을 위해 인생을 바꾸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유해진은 제자리에서 한 마음을 가지고 성실히 있을 때 조연에서 주연으로 완전히 인생이 바뀔 수 있 음을 보여주었다. 변화가 어렵다면 성실을 택하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