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ion id="attachment_25725" align="alignleft" width="900"] 출처 : 네이버 영화[/caption]
디지털세대를 위한 ‘벤허’
아카데미상 11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윌리엄 와일러 (William Wyler) 감독의 대작 <벤허>(1959)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에서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을 주는 이야기와 온 세상이 알고 있는 명작을 다시 만드는 일은 굳이 홍보를 하지 않더라도 관객이 몰려올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거기다 지금은 디지털시대로 사람도 세상도 모두 변하지 않았던가!
그 유명한 전차경주 장면을 3D나 IMAX로 볼 수 있도록 새로운 세대를 위한 디지털 감각으로 ‘벤허’를 만드는 일은 분명 영화사적으로나 할리우드가 추구하는 돈에 대한 욕심 모두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 거라는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1959년작 <벤허>를 당시 최첨단 상영방식인 70미리 초 대형화면으로 지켜본 세대가 아직 살아있고, 그들의 눈과 마음을 만족 시켜줄 만큼 뛰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옛 것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기 쉬워서 흥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것 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8월 19일 미국에서 개봉한 <벤허>는 3,084개란 적지 않은 수의 스크린을 확보했지만 첫 주말 천백삼십오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기록해서 박스오피스 5 위에 랭크되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소시지 파티> 같은 추잉검 같은 일회성 오락영화에 밀린 결과였다.
[caption id="attachment_25726" align="alignleft" width="900"] 출처 : 네이버 영화[/caption]
파라마운트와 손을 잡고 <벤허>를 만든 MGM 관계자는 기독교인들이 꾸준히 영화를 볼 것을 기대한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지만, 9월 11일 현재 북미 지역에서 이천오백육십만 달러, 북미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사천이십만 달러 등 총 육천오백팔십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내는데 그쳤다.
일반 영화로 치자면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벤허>의 명성과 1억 달러의 제작비를 감안했을 때 썩 좋은 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뉴욕타임지의 영화평론가 스테판 홀든(Stephen Holden)은 “얼핏 봐서도 모건 프리먼을 제외한다면 낯선 감독과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1억 달러라는 제작비용과 달리 값싸 보인다”라고 평가한 말은 대중의 시각을 반영한 평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2016년작 <벤허>가 잘못 만들어진 작품이 란 뜻으로 해석되기보다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9년 작과 비교했을 때 높은 기대감을 만족시키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말해서 1959년 <벤허>가 없었다면 이번 티무어 베크맘베토프의 <벤허>는 꽤 괜찮은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MGM과 파라마운트 같은 대형 영화사가 함께 제작했지만 대중과 평론가로부터 워낙 훌륭한 평가를 받은 작품을 다시 만든다고 했을 때 과연 어느 유명한 감독이나 배우가 선뜻 나설 수 있었을까?
같은 내용의 영화라도 연출자나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 이 영화라고는 하지만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과 비교될 수밖에 없고, 할리우드의 스타라면 남우주연상을 받은 찰턴 헤스턴의 연기를 능가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잘해야 본전치기 밖에 되지 못하는 영화에 누가 모험을 하겠는가! 구소련의 영토였던 카자흐스탄 출신의 티무어 베크맘베토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잭 휴스턴 (벤허)과 토비 케벨(메살라)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명하진 않지만 역량을 갖추고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연출자와 배우들을 통해 2016년 <벤허>는 새롭게 디지털시대의 관객을 맞게 된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25727" align="alignleft" width="900"] 출처 : 네이버 영화[/caption]
이전 영화와 다름에 메시지가 있다
2016년작 <벤허>는 전작과 비교할 때 세 가지의 다른 점이 눈에 띤다. 첫째,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로마와 유대의 갈등을 보다 실제적으로 묘사했다.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던 주인공 유다 벤허와 그의 형제 같은 친구인 메살라와의 갈등의 시작은 유대 총독 부임 행렬을 구경하던 중 벤허가 실수로 떨어트린 기왓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6년 작품에는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벤허의 집에 숨어든 유대독립주의자가 등장한다.
그가 벤허의 집에서 쏜 화살로 인해 벤허는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그는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벤허의 도움 요청을 묵살한 메살라는 그 이후부터 식민지배자인 로마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고 벤허는 복수심이 불타오르는 유대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즉 이번 영화에는 유대인으로서 벤허가 가진 정체성이 보다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둘째, 예수님의 모습 을 직접 묘사한 점이다. 노예로 끌려가는 벤허에게 물을 주는 예수님의 모습이나, 이와 반대로 벤허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물을 건넬 때 단순히 손만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은 전신을 드러내며 목수의 이미지 또한 보여준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는 장면 또한 멀리 찍는 익스트림 롱 샷을 구사하기 보다는 클로즈업을 통해 십자가의 고통과 구원의 역사를 세밀히 나타냈다.
이것은 벤허의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밝힘으로써 영화에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깊이 드러내려는 제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의 제작자인 마크 브로넷(Mark Burnett)과 로마 다우니 (Roma Downey)는 할리우드에서는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으로, 영화 <선 오브 갓>과 TV미니시리즈 <더 바이블>의 프로 듀서로도 활동한 사람들이다.
영화의 선교적 관점에 늘 관심을 기울인 두 총괄프로듀서는 <벤허>를 충실한 기독교영화 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신작 <벤허>의 특징을 가장 잘 묘사한 부분이다. 1959년작 <벤허>에서 메살라는 전 차경주가 끝난 후 부상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집트에서 온 동방박사 발타사르의 딸 이라스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메살라는 벤허로부터 용서의 메시지를 듣고 화해하며 그와 함께 힘차게 말을 타고 달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미움과 적개심을 끝내고 사랑과 용서를 통한 새로운 삶이 얼마나 역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듯 두 사람의 말달리는 모습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영화가 무엇보다 용서의 메시지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일곱가지 말씀 가운데서 이 영화는 오직 한 가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는 말씀만을 장면에 넣은 것 또한 용서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앞으로 <벤허>는 용서의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