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필라비치의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예배"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예배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특별히 몸으로 표현하는 예배에 관해서 말입니다.^^
"히브리 문화는 인류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히브리 문화에서는 인간을 육체 안에 갇힌 영혼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영혼과 육체가 서로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믿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육체가 우리 마음의 모습을 비춘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 예배할 때 특별히 그렇다. 억지로 지어낸 미소 같은 외적인 표현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해보거나 우리를 믿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위선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있다면 몸으로도 표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예배 중에 춤을 추거나 손을 드는 것은 그들의 문화가 아니며, 자기들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만든 장애물이다. 우리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웃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행동을 한다." _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예배(p.60-61) [규장출판사]
찬양인도자로서 얻는 특권 중 하나가 예배드리는 회중을 볼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예배를 인도해가지만, 때로는 예배자들을 보면서 도리어 은혜와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허다합니다!)
앞에 있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아니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유일한 청중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쏟는 예배자, 그 분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예배자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식의 다양한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뭔가 화나 보이는 사람들, 찬양 가사는 "기쁨의 춤추리"인데 전혀 기쁘지도 춤추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지요.
찬양인도자가 찬양인도 하다가, "저한테 화나셨어요?"라고 묻는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정말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왜 수련회 때는 춤추고 뛰고 반응하는데, 교회에만 돌아오면 사람들이 의식되고, 분위기를 타게 되는 것일까? 인도자 뿐 아니라 회중들도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고민될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일 수도 있고, 예배는 엄숙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점 때문일 수도 있고, 정말 춤추기 싫은 날도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시간은 그 어떤 때보다 더욱 표현되어져야 하고, 열정적이여야 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 이니까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먼저 찬양 가사대로 표현합시다.
"주 임재 하시는 곳에"라는 곡을 할 때 제가 자주 하는 멘트입니다. 이 찬양 가사대로 표현합시다. 일어나고, 기뻐하고, 소리 높이고, 두 손을 들고, 춤을 추며 왕되신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찬양 가사대로만 표현해도 참 다양하게 주님을 높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나의 유일한 청중이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합니다. 마치 그 분 앞에 내가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온 몸으로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제 앞에는 약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깊이 예배하고 있었고, 사실은 그정도로도 좋다고 생각되는 예배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놀라운 주 예수"의 후렴구인 "주님 앞에 내가 섭니다"라는 가사를 부르는 데 나의 왕되신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네가 내 앞에 서 있다면, 내게 너의 춤을 보여달라"라고 따뜻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첫 발이 떼어지지도, 나만의 동작이 나오지도 않던 저였습니다. 대충 리듬은 타고, 박수치는 것이야 전문가였지만, 춤은... 그것도 인도자로서 춤추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서 회중에게 도전했습니다. 다같이 춤을 추자고. 그 이후 상황은 모르겠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춤을 췄고, 무대를 휘저으면서 다닌 기억밖에...^^ 내 앞에 1000명을 본다면 불가능한 일, 그러나 이 시간 나와 하나님 단 둘이 있고, 그 분께 나의 사랑을 보여드리기로 결정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먼저 크게 노래하는 것이 마음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마이크 필라바치의 표현대로 영혼과 육체가 서로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마음을 흔드는 나의 목소리가 나의 온 몸을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소를 주님께 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께 회개의 심각한 표정, 헌신의 치열한 표정외에도 사랑에 잠긴 표현, 행복에 젖은 표정들을 많이 많이 보여드립시다. 그 분은 우리의 좋은 아빠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