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땅이 이야기_박성민

사랑이 이기도록

어릴 때 네모난 나무 책상 중앙에 가지런히 선을 긋고
짝궁이랑 아웅다웅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니 넘어오기만 해라~
흥,됐다 마. 니나 잘해라~넘어오면 다 내끄다.
오글오글.
유치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커서도 이런 선을 긋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선을 넘게 되면 여긴 내 영역인데요? 왜 그러시죠?라고 권리를 주장합니다.

내 집 앞 주차문제,
층간 소음,
버스- 지하철 안,
식당
도서관
직장
등등.......................(아주많이)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부서실 사용,
행사 협조,
교회 차량 이용,
등등..........................(의외로 많이)

어떻게 보면 그건 당연한 것이며,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아무도 뭐라고는 할 수 없는,
난 얼굴 바짝 들수 있는 너무나 당당한 것들입니다.
'권리'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권리를 주장하다 보면
어느새 찡그려져있는 내 얼굴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소리는 앙칼져 있구요.
팔은 허리춤에 올라가 있던지 팔짱을 끼고 있죠.
그리고 마음은 사이좋게 서로 상해 있습니다.

권리를 주장하다 사랑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글쎄요, 맞는 걸까요..?

사랑이 없다면 거기에 하나님은..계시겠지요..?

그럼, 다가지고 하나님을 잃는다...?

물론 사랑이라는 말이 늘 바보처럼 참고만 살자,
당하고만 살자는 말과 같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양보할 수 있다면 바보처럼 하고,
배려할 수 있으면 좀 손해를 봐도 하되
그렇게만 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가정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소리를 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럴때는 상대방에게
나의 입장을 이야기할 때, 권리를 주장할 때
정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이며,
무례하게 행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한 여름의 차 안 처럼 격앙된 나의 마음에
사랑의 물을 뿌려
기분좋은 시원함으로 전달하자는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잃지 말자는 거며,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그때도 놓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사랑이 이기도록..
설령 다 잃더라도 하나님은 잃지 않도록.. .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품격'이 아닐까 합니다.

하땅이 이야기 '사랑이 이기도록'을 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