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땅이 이야기_박성민

치열한, 그래서 더 아름다운

사탄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막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분명 자신의 머리가 깨어지고 결정적인 승리를 빼앗기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요.

오히려 사탄은 군중들을 동원해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막아야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룟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를 배신하게 하도록 하기 보다는
십자가를 피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을까요..?

사탄은 예수님이 완전한 신이시지만 또한 완전한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살점이 뜯겨져 나가는 극도의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죽음을 피하실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벌거벗고 나무에 달리는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
로마 병정들과 대제사장들의 가소로운 모욕에 본인이 외치던 사랑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에 분명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 계산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만큼 십자가의 고난은 고통스럽다는 표현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그 부끄러움은 이성을 가진 한 사람이 견디기 힘든 것임이,
그토록 외치던 사랑하라는 말씀이 행동으로 지켜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시니까 그냥 이루어진 십자가 사건이 아닙니다.
너무도 격렬한 싸움, 치열한 영적 전투였습니다.

성금요일인 오늘,
어김없이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시끄러운 세상만큼 내 안도 그렇습니다.

오늘만큼은 조용했으면좋겠는데
어김없이 격렬하고 치열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예수님을 더 바라 봅니다.
쉽게 이길만한 싸움만 골라하신 예수님이 아니시기에.
가벼운 승리를 하고 생색내시는 예수님이 아니시기에..
상상할 수 없는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신 나의 주님이시기에.

잊지않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화롭게 되실 것임을.
그들이 보지 못하는 승리가 저기에 있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

하땅이이야기 '치열한, 그래서 더 아름다운'을 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