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땅이 이야기_박성민

난 아빠니까

작년 겨울, 한창 입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차가운 물에 고양이세수를 하고선
집 건너편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렇게 서두른 댓가처럼 얻게되는 창가에 조용한 자리.
갓 온풍기를 틀어서 아직도 입김이 나는 도서관에 앉아 잠깐 기도하고 책을 폅니다

매일 반복되는 타이트한 하루 그 속에서 지쳐가는 몸.
내가 만들어놓은 시간계획과 그 틀 속에 갇혀 있는 나.
공부하면 할 수록 할 게 많아지는 것같은 책들 속에 파묻히는 마음.
마음껏 공부한다는 게 참 감사하면서도
입시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느껴야만 할 것같은 어디까지가 적절한 건지 모를 부담감.
그리고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도 모르는 깜깜한 굴 속에서
단지 하나님만 신뢰하며 한줄기 빛이 세어 나올 때까지 걷고 있는 .. 그럴 때였습니다

얼마를 앉아 있었을까

눈이 아파서 고개를 젖히고 잠깐 눈을 비비며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풋살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는 몇몇사람을 부러운 듯 바라보다가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다급한 비명 소리를 들었습니다
운동장 옆에 골목길에 어떤 아저씨와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아이의 팔을 잡아 끌고 있고 아이는 팔을 뿌리치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저씨가 끌고 가려는 곳이 어디 앞인 줄 알면 금방 무슨 일인지 눈치를 채고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서관 옆이 보건소였거든요

어찌할바를 몰라 쩔쩔매는 아버지,
그리고 끌려가는 곳이 지 무덤인양 필사적으로 악악 거리며 드러눕는 꼬맹이.
닭가슴살마냥 수분기 없이 뻑뻑한 생활 속에서 그 광경은 내게 충분히 재미난 구경거리였습니다

한참을 씨름하던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은 결국 아버지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다른 때같으면 싱거운 그런 장면이 그날은 왜 그렇게 재미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좀더 하지..하는 아쉬움으로 이제 아무도 없는 골목을 바라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버지와 저 꼬맹이가 마치 지금 하나님과 나와의 줄다리기같구나..

꼬맹이 눈에는 자기 아버지를 보며 이 아버지가 자기한테 왜 이러나 싶을겁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저런 곳으로 자기를 끌고 갈까 싶을겁니다
우리 아빠 맞나 싶을 테구요
반면 아버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꼬맹이를 사랑하는 아버지로서는
그 녀석이 그 상황을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얼른 데려가서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구요
아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들이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 해주고, 사다주는 아버지는 없을겁니다
있다면 잘못된 사랑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봐도 명백한 사랑의 법칙을 우리는 왜 저 꼬맹이처럼 오해하고
애꿎은 아버지만 괴롭힐 때가 많은지..

나는 아버지의 판단을 정말 신뢰하고 있었던 걸까요
아버지의 생각이 나보다 높다는 것은 정말 인정은 하고 있었던 걸까요
나는 이래줬으면 좋겠는데 아버지는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신다고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는 건 아닌가 다시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아버지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분이 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앞으로 아버지가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심을 볼때 괜한 그 분을 미심쩍게 여긴다면
그때마다 질질우느라 눈물을 빼고
징징거리느라 목소리만 쉬는 사람은 나일뿐입니다

그것보단 나를 치료하는 곳으로 이끄시는 아버지를 정말 신뢰하고
나를 훈련시키는 곳으로 데려다 놓으시는 아버지 뜻을 이해하는 데까지 자라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아버지도 원하시는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끝내 그렇게 생각이 자라지 않으려고 한다해도
아버지는 앞으로도 그러실 수 밖에 없으실거에요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나를 바르게 키우고 싶어하시는 분이시고
그 분은 내 아버지시니까요

어디가 아팠을지 모를 그 꼬맹이가
결국 세상에서 제일 무시무시한 그 곳에 들어가서

주사를 맞으며 울고 약을 먹으며 찡찡거렸을테지만
아픈 곳이 낫고 찾아왔을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부끄러움은
지금의 저와 별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땅이이야기 '난 아빠니까'를 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