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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전차 - 신앙의 원칙을 지키는 청춘에게 희망을 주다

디지털로 새롭게 탄생한 기독교 영화의 고전 2016년은 기독교영화가 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한 해로 기록 될 전망이다.

금년 2월부터 한국의 극장가에는 매달 빠짐 없이 새로운 기독교영화들이 관객을 맞이했다.

CBS가 기독교영화발전을 위해 설립한 CBS시네마에서 수입한 <레터스 투 갓>을 시작으로 3월에는 <일사각오>와 <부활>이 부활절을 기념하여 상영했는가 하면, 4월에는 <신을 믿습니까?>와 <신은 죽지 않았다2> 그리고 <블랙 가스펠2>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에 대한 도전을 던지며 기독교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갔다.

가정의 달의 성격에 맞게 5월에 개봉한 <드롭 박스>와 <미라클 프롬 헤븐>은 사랑과 기적의 현실을 스크린에 담아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기독교영화평론가로서 행복한 일은 기독교영화의 릴레이식 개봉이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6월에는 휴 허드슨 감독의 1981년 명작 <불의 전차>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극장상영을 시작하는가 하면, 7월에 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대작 <벤허>가 70미리 영화의 웅장함을 디지털 기술에 담아 다시 한 번 기독교예술의 경이로움을 선물할 계획으로 있다.

책에만 고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도 고전이 있다.

<불의 전차>와 <벤허>는 디지털 세대를 위한 기독교의 고전 영화라 할 수 있다. 고전은 단지 오래 전에 만들어진 유명영화라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세 가지 점에서 고전영화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첫째, 고전이 지닌 수준 높은 작품성은 시간이 흘러도 그 역량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주는 까닭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와 그것을 표현해 내는 영상미에 있어서 두 작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불의 전차>가 아카데미상 4개 부분을 수상했는가 하면, 1959년에 만든 <벤허>는 아카데 미상을 무려 11개나 획득했다.

<타이타닉>(1997)과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2003)이 다관왕 타이기록을 세웠다고는 하지 만 1980년대 이후로 아카데미상의 시상부문이 늘어난 것을 생각해보면 <벤허>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를 알 수 있다.

둘째, 고전이 갖고 있는 메시지는 시공을 초월하여 관객에게 내적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불의 전차>는 인간이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신앙의 철칙으로 삼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나안’ 성도(교회는 ‘안나가’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써 ‘가나안’은 ‘안나가’를 거꾸로 발음한 것)라는 말이 익숙한 현대 의 몇몇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시대 와 상관없이 신앙인이 따라야 할 원칙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자신에게 남보다 잘 뛸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리는 주인공 에릭 리델의 모습에는 특정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가 깊이 눈여겨봐야 할 신앙 의 메시지가 들어있음이 분명하다.

<벤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한 인생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벤허>가 주는 신앙의 감동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 가 없으리라.

셋째, 고전은 오늘 나에게 주는 의미로 작용한다는 점에 그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고전영화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현재성을 띤다는 사실은 영화 안 에 내재된 메시지가 성경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의 전차>의 경우 헬조선과 흙수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도는 오늘날을 사는 젊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한 영화로 와 닿을 수 있다.

신앙의 원칙을 지키는 삶에 내리는 축복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세대’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취업과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N포세대가 마지막까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특히 성경 의 원칙을 지키는 신앙이야말로 그동안 포기한 것들을 다시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원천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불의 전차>의 주인공 에릭 리델의 ‘신앙의 원칙을 지키는 삶’이 가져다준 축복의 결과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에릭이 그의 주 종목인 100미 터 경기에 출전하기로 한 날이 공교롭게도 주일이었다.

예배드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던 에릭, 또한 이 때문 에 주일에 축구하는 고향 아이에게 축구보다 예배가 중요함을 알려주었던 그였기에 주일에 진행되는 경기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게 된 다.

영화는 경기가 열리 는 그 시간에 에릭이 교회에서 이사야서 40장 31 절 말씀을 읽는 장면을 보여준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 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에릭은 동료 선수의 제안으로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400미 터 경기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100미터 금메달 후보였던 만큼 400미터에 나가 우승한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는 없다. 100미터와 400미터는 뛰는 방법도 전략도 다르다. 그런데 자신의 주 종목도 아닌데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의심할 수 있다. 에릭은 달랐다.

그는 모든 행동의 기반을 신앙 위에 두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남보다 잘 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신만 큼 이 재능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신념이 그를 최고의 선수뿐만 아니라 종목이 다름에도 열정을 같고 뛰게 한 것이다.

우리는 리델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고 그것을 열정 가운데 누릴 줄 아는 ‘은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연례행사처럼 학생들을 모아 <불의 전차>를 보곤 한다.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워밍업으로 이 영화를 보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지성을 겸비한 영국 캠브리지의 학생들이 조국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 달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없다.

중국선교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리는 것을 보노라면 무신론이 지배하는 세속적 사회에서 은혜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자신보다 큰 목표를 향해 달리는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