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영화 콤플렉스를 우려하다
대한민국과 같이 치열한 영화시장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 착한 영화는 대박을 터뜨리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은 선함과 흥행의 관계란 숫자를 대입하는 즉시 정답이 나오는 수학의 공식과 같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번방의 선물>(2012)과 같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착한 영화들도 드물긴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그래도 착한 영화의 성공은 우리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 사업에 성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관음증’이라는 영화 관람의 속성에 기인한다. 영화를 보는 일이란 호기심의 대상을 몰래 엿보는 특성을 예술적이며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행위이다.
가끔씩 여탕을 훔쳐보다 경찰에 붙잡히는 치한들의 행위나 군사작전을 몰래 관찰하다 들킨 스파이의 행위는 불법적인 것으로 처벌을 받지만, 영화를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영상예술을 누리는 문화를 향유하는 행위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돈을 내고 어둠 속에 앉아서 남의 삶을 속속 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 비록 영상으로 재현된 것이긴 하지만 대통령의 집무실부터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침실 속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의자에 몸을 누이며 스크린 위에 나타난 대상을 지켜볼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호기심이 움직이는 방향이다.
호기심은 사물과 이치를 깨닫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과학을 발전시키고 인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촉진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려하기 보다는 악하고 추한 것에 훨씬 크게 관심을 가지도록 우리의 마음을 선동하는 성향이 강하다.
소위 말해서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영화들이 관객이 시선을 빼앗는 것 또한 인간의 왜곡된 호기심 때문이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인간의 타락한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는 말씀은 죄와 타락의 문제가 모든 인간 문제의 근원임을 말해준다.
이한 감독의 <오빠생각>은 <7번방의 선물>을 만든 영화사 NEW가 다시 한 번 착한 영화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을 가지고 작심하고 만든 영화다.
제작비로 백억 원을 투자했다는 인터넷의 소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6·25동란을 배경으로 전쟁고아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이 영화의 장르를 전쟁드라마로 여겨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전투 장면은 실감 있게 잘 찍었다.
거기다 부산 피난시절을 재현하고 영화의 중심 무대인 전쟁고아들의 시설과 교회 등 촬영세트를 직접 지어서 제작한 만큼 영화에 투입된 비용이 적지 않음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좋은 소재와 풋풋하고 신선함을 잃지 않은 임시완, 고아성이 만들어가는 이 착한영화가 불과 백만이 조금 넘는 관객스코어를 기록하는데 그친 것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평화와 통합의 꿈을 노래하다
6·25에 참전 중 부상을 입은 한상렬 소위(임시완)의 새로운 임무는 가족을 잃고 의지할 곳 없는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일이다.
음악을 공부한 경력을 발휘해서 자원봉사자 선생님인 박주미(고아성)와 함께 전쟁고아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나서게 된다.
영화는 두 가지의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하나는 전쟁으로부터 상처받은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어린 사람들이 이념간의 갈등 속에 죽어가야 하는 불행한 현실을 조명하고, 다른 하나는 합창을 통해 그 상처가 치유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합창단의 주요 멤버인 동구(정준원)와 순이(이레) 남매는 아버지가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마을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의 기억이 있다.
특히 순이는 잘 알지 못하고 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인민군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던 것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그 기억은 순이의 트라우마가 되어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영화는 갈등의 구조를 두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한편, 모든 갈등이 합창을 통해 해결됨으로 합창이 지닌 사회통합의 상징적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해주고 있다.
갈등의 한 축에는 동구·순이 남매와 이들의 선동 때문에 그 또한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동네 친구 춘식(탕준상)이 있고, 다른 한 축은 한상렬 소위와 박주미 선생과는 대립되는 방향으로 물욕에 눈이 어두워 고아들을 이용해 먹는 상이 군인 출신의 갈고리(이희준)가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동구와 춘식의 맞짱 노래대결에 있다. 한 소위는 주먹다짐을 하는 동구와 춘식을 불러 새로운 결투를제안한다.
각각 아일랜드 민요인 ‘데니 보이’와, 미국 민요인 ‘애니 로리’를 동시에 부르면서 상대방을 따라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면 규칙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멋진 화음을 탄생시킨다.
합창이란 서로 다른 소리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란 설명이 굳이 필요 없을 만큼 천사들의 소리는 모든 관객의 마음을 천국으로 향하게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기 살기로 싸우던 두 어린이가 내는 천상의 화음이 우리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전쟁 속에 꽃핀 아이들의 멋진 화음은 그래서 우리를 더욱 슬프고 아름답게 한다.
한상렬 소위가 자신을 죽이려던 인민군 어린 병사를 죽이지 못한 일과 전쟁고아를 돌보는 일이 수동적인 인간애의 모습이라면, 합창단을 조직하여 단원들과 전쟁 가운데 상처 입은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능동적이며 화합과 평화를 향한 창조적인 발상임에 틀림없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남북의 대결이 심화되고 있는 이때에 영화 <오빠생각>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시대적 소명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도와준다.
결국에는 적지 않은 사람이 상처 입을 것이 분명한 현 상황을 돌이킬 수 있는 국면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북이 하나 되는 꿈마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남북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향해 조화로운 찬양을 하게 되는 그 꿈을 말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시 13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