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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영화산책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

거짓 사회 속 의리와 진실

제보자

화인(火印) 맞은 자의 행보

‘으리(義理)’를 내세운 식혜광고가 뜨기 시작하면서 한국사회에 때아닌 의리열풍이 불었다. 의리열풍의 주인공인 김보성은 지난 6월 진행된 인기 토크쇼 ‘힐링캠프’에 나와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의리에 대한 대중의 목마름 같다. 정의로움에 대한 갈망의 폭발인 것 같다. 의리의 진정성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원인 분석은 좀 다르다. 우리 사회가 의리 없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사회라서 의리열풍이 불었다기보다는, 정의롭지 못한 의리를 마치 선하고 인간다운 행동인양 착각하는 잘못된 행태를 꼬집는 것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고향사람이거나 같은 학교 출신을 데려다 쓰는 것을 의리로 착각하거나, 좀 아는 사이라고 특별대접을 해주는 일을 의리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의리에 대한 풍자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빚보증 서기를 거절하거나 옆에 있는 친구가 시험답안지를 보여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는 일은 과연 의리 없는 행동일까? 잘못된 의리 때문에 망했던 사람이 어디 김보성 한 사람뿐이었겠는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서 왜곡된 의리는 진실을 가리고 사람을 속여 불신과 부패의 사회를 만드는 첩경인 것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보자>는 사사로운 의리에 빠져 묻힐 수도 있었던 진실을 언론에 제보함으로써 공공을 향한 의리를 지킨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생히 기억하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

출연 인물들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집단으로 나누어 대립하고 있다. 이장환 박사(이경영)와 줄기세포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가진 대다수의 국민, 그리고 이장환 박사를 위해서라면 그를 비판하는 세력으로부터 든든한 방어벽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언론사 수뇌부들이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또 하나의 축은 줄기세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PD추적’팀의 윤민철 PD(박해일)와 사건의 결정적 제보자인 연구원 심민호(유연석)로 구성된다.

얼핏 보더라도 양축의 대결은 마치 거대한 골리앗과 왜소한 다윗이 벌인 싸움판과 흡사하다. 윤민철 PD에게는 회사 임원들로부터 취재 및 보도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고, 심민호 연구원은 아내가 여전히 이장환 박사의 연구팀에 있는 까닭에 쉽게 배신할만한 형편도 되지 못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영환 박사의 태도에 있다. 자신의 거짓 연구를 폭로하는 제보자와 그 가족을 구슬리는 능수능란한 태도는 불같은 위협과 공갈보다도 더 무서운 냉기를 뿜어내어 관객을 얼어붙게 만든다.

잘못에 대한 인정이나 회개없이 자신의 신념을 마치 진실인 듯 밀어붙이는 이영환 박사의 태도에는 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비극이 숨어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후 4:2).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 쓴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가르침은 양심이 마비된 거짓말하는 위선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제보자

국익보다 진실을 원하는 하나님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부고발자로서 심민호의 역할을 중심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것 또한 의리열풍 속에서 깊이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영화의 시작이 보여주듯이 제보가 있지 않았다면 윤민철 PD의 역할도 있을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자신의 아내가 여전히 이장환 박사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 역시 줄기세포를 필요로 하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는 설정은 진실을 말하는 제보자의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를 인식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제보자 심민호보다 사건을 보도하려는 윤민철 PD에게 무게가 실리는 경향은 이 영화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은 사건의 진실을 보도해야하는 민주주의 시대의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영화가 인식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영화의 제목은 ‘제보자’다. 사건의 결정적 단서 없이 증언만 있는 상태에서 심민호 연구원과 윤민철 PD가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은 원래 영화의 의도된 중심이 제보자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PD로서의 모든 걸 걸고 왔다는 윤민철 PD에게 심민호 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모든 걸 걸고 여기까지 왔겠지만, 난 다 버리고 여기까지 왔어.”

인생의 치명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내부의 문제를 고발한 심민호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용기를 표현하는 일에 임순례 감독이 공을 들인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지만 제보자 역할을 맡은 유연석보다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박해일에게 관객의 시선이 맞춰진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사건의 진실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국익을 위해 덮을 것인가의 문제를 제시하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곧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명답을 알려준 것은 이 영화가 그리스도인에게 제공하는 가장 의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엡 4:25)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진리와 국가의 이익이 상충될 때 진리의 편에 서야 함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영화 <불의 전차>(1981)에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주인공 에릭 리들(Eric Liddell)이 그가 출전하는 100미터 경기가 주일에 거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출전을 포기하는 일화가 나온다.

영국 황태자를 비롯한 임원들은 국익을 내세워 출전을 강요하지만, 에릭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일은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그의 행동이 신앙적으로 옳았다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어도 국익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지만 진리를 실천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잊어서도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