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ㆍ문화
강진구영화산책

랜달 월레스 감독의 천국에 다녀온 소년

천국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천국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라

영화 <천국에 다녀온 소년>(Heaven Is for Real)은 3분 동안 천국을 보고 온 4살 난 어린 아이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천국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천국에 대한 소망과 동경을 가지고 살아가며 세상사를 모두 초월할 것 같지만 이런 예상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도 알고 영화도 알고 있다.

우리는 세상 일에 너무 속박되어 영원히 살 집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먹고 살고 있지 않은가! <천국에 다녀온 소년>은 세속적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들춰내며 그 믿음의 회복을 완곡하게 권고한다.

토드 부포 목사(그렉 키니어)는 목회 외에도 민간 소방관과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로 봉사하는 전형적인 소도시의 목회자다.

그가 일반 목회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내와 함께 차고 문을 고치는 사업으로 생활비를 보태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는 가장이자 목회자로 삶의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4살 난 아들의 맹장이 터지면서 수술을 받고 혼수상태에 이르기 전까지 말이다.

아들 콜튼(코너 코럼)은 맹장이 파열되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거듭된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 돌아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목사인 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아들 콜튼이 뜬금없이 천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콜튼은 자신의 영혼이 몸밖으로 나와서 본 수술실 정경이나 하나님에게 격하게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토트 목사는 처음에 아들의 이야기를 교회학교나 책에서 배운 것에 상상력을 덧입혀 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들의 이야기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토드 목사의 고민은 천국은 믿어도 되지만 천국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이상하게 들리는 오늘날의 교회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는 천국에 대한 의심을 두 가지 형태로 묘사한다. 하나는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s)과 관련하여 무신론자인 학자는 이것이 천국과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뇌의 비정상적 활동이거나 인간이 꿈을 꿀 때처럼 무의식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허상임을 언급한다.

다른 하나는 교회운영위원들이 토드 목사가 설교에서 아들의 천국경험을 언급한 이후로 그를 불신하기 시작한 사실이다.

이것은 믿는 자의 딜레마다. 분명 천국이 있음을 믿지만 천국에 갔다 온 사람의 말은 믿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천국을 그릴 수 있을까?

영화는 관객들에게 천국의 존재와 더불어 천국이 어떠한 곳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먼저 비신앙인에게 콜튼의 천국경험이 사실이라는 점은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 영화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영화 첫 부분은 리투아니아계 미국 여자아이인 아키아나 크라마리크(Akiane Kramarik)가 천국에서 보고 그렸다는 예수님 초상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네 살 때 천국에 대한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묘사한 천국은 콜튼의 이야기와 놀라울 만큼 일치했다.

아키아나가 그린 예수님 초상화를 본 콜튼은 자신을 무릎 위에 앉혀준 예수님이 바로 초상화의 주인공임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천국이 있음을 일치된 증언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영화 안팎으로 논란이 된 것은 콜튼의 천국에 대한 세밀한 묘사부분이다.

천국에도 동물들이 있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예상은 할 수 있다. 천국에서는 아무도 안경을 쓰지 않고, 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점부터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있다.

왜냐하면 콜튼의 말에 따르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난 못자국을 봤기 때문에 혹시 사람도 죽을 때의 모습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콜튼이 천국에서 봤다는 누나가 콜튼이 태어나기 전 엄마가 유산한 태아였다는 대목에서는 천국의 존재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영화를 본 성경학자들이 조심스럽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성경에는 콜튼의 증언과 같은 천국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은 천국(하나님 나라)을 단지 비유로만 설명하셨기 때문에 조심스런 긍정과 의심하는 눈길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요 20:19-23)을 따라 추정해 본다면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천국에서 살 것은 분명하다.

예수님은 분명 육체로도 부활하셨다. 부활한 예수님의 육체는 벽을 통과할 만큼 3차원적인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업 시간에 기독교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학생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성형 전으로 부활할까, 아니면 성형 후의 상태로 부활할까?” 이 질문은 천국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사는 우리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부활할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막 12:25)는 말씀처럼 세상의 모양이나 상태에 제한받지 않으며,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콜튼의 증언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까?

천국에 갔다 온 어린 아이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평가할 때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

이 영화의 가치가 ‘천국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천국은 어떤 곳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하면 이 영화를 대하는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당신은 천국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