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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영화산책

블록버스터 판타지 ‘노아’

기독교세계관으로 바라보다

사사기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현대문화의 전형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는 감독이나 제작자 생각에 좋은 대로 성경의 내용을 바꿔버린 영화로서, 할리우드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성경의 진리성과 바른 해석의 가치보다는, 성경의 내용은 상업을 목적으로 한 예술적 상상력에 따라 얼마든지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영화인 것이다.

이를 우리는 사사기적 세계관이라 말할 수 있다. 사사기의 주제는 마지막장의 마지막 절로 압축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보다는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민족들과 결혼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의 세계관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즉, 절대적인 진리를 앞에 두고 결국에는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행했다는 뜻이다.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노아와 홍수 이야기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에 충실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유대 기독교적 전통과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이 말하고 싶고 관객이 보고 싶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새로운 노아 이야기를 자신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감독에게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조리할 수 있는 창작의 재료인 셈이다.

그래서 감독은 영화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이란 말 대신 종교나 신화에서 사용하는 창조주(Creator)란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했고, 노아와 홍수사건의 큰 골격만을 받아들인 채 자신이 보고 싶은 다른 내용으로 채워버렸다.

먼저 논란의 시작이자 관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감시자(Watcher)의 등장과 역할은 감독과 할리우드가 가진 사사기적 세계관의 결정체다.

감시자들은 네피림으로 추정되는 거인으로서 하늘에서 천사로 내려왔지만 돌무더기 속에 갇혀 지내며 인간들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노아에 의해 하나님의 의로운 역할을 깨닫고 방주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나중에는 빛이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이들의 모양이나 그들이 내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온 외계생명체인 거대한 트랜스포머와 비슷하고, 노아(러셀 크로우)를 도와 방주를 공격하는 인간들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잔혹한 검투사들의 얘기를 보여준 <글래디에이터>와 흡사하다.

감시자들의 등장은 거대한 방주를 어떻게 만들었을지에 대한 감독의 소신 있는(?) 해결책이었을지는 몰라도 할리우드의 오락성을 위해서라면 성경은 자유롭게 해석되고 첨가되며 삭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란시스 쉐퍼가 ‘노아’를 본다면

상대주의 문화관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표류하던 서구의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제공해주었던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의 문화관은 오늘날 선교 전략을 구상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문화를 세계관의 필연적인 결과로 봤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비평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나아가 문화를 전도의 접촉점으로 삼았다.

쉐퍼의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문화분석은 <노아>와 같이 공들여 만든 영화에 공들여 대답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자세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인들이 1억2천5백만 달러를 들여 온갖 수고를 감당하고 만든 영화에 대해 단지 성경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비난만을 퍼부을 일은 아닌 것이다.

기독교세계관으로 성경의 소재를 영화화한 <노아>를 판단하는 일을 원칙적으로 정의하자면 복음주의 선교신학자인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의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것만을 바라보아야(look at)할 책이 아니다. 성경은 그것을 통해 보아야(look through)할 책이다.”

즉, 우리가 세상을 보는 데 필요한 안경 역할을 하는 것이 기독교세계관이다. <노아>는 비록 성경과 꼭 들어맞는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한 영화를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우리들은 비판을 넘어서서 세상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영화를 제작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다른 유익을 얻어갈 수 있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리스도인들이 문화를 평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그리고 일반인들도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분석법을 제시했다.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분석법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예술성, 둘째는 기술성, 셋째는 사상성(message), 넷째는 종교성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노아>에 이를 적용하자면 노아와 아들과의 갈등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 실제 크기의 방주를 짓는 것과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조합한 사실적인 화면, 그리고 주연배우들의 명품 연기는 분명 예술성과 기술성에서 인정받을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흥미롭게도 사상성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해보자면, 비기독교적인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아낸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보게 된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씨네21>의 김혜리가 주목한 것은 노아에게서 나타난 친환경적인 메시지였다.

‘<노아>는 다양한 기준에서 뜻밖인 영화였는데 채식주의와 환경운동 슬로건을 지금껏 접한 어떤 주류영화보다 직설적으로 설파한다는 점도 놀라움의 하나였다.

“동물을 왜 죽이죠?” “먹어서 강해지려고.” “힘은 창조주로부터 오는 거잖아요?” 경악한 아들과 노아의 대화는 이 집안의 식탁 메뉴를 암시한다.

대조적으로 노아의 적대자를 대표하는 인물 두발가인(레이 윈스턴)이 방주에 밀항해 살아 있는 파충류를 씹어 먹는 순간을 영화는 강조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비판하는 영화에 세상사람 누군가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발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비판하는 일이 능사가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 본다는 것은, 발견된 좋은 것을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지식을 축적하는 일임을 아울러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