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는 대학만 가면 인생이 어떻게든 흘러갈 듯했다. 20대 때는 어느 직장을 가야 하나 걱정이 돼 취업 준비에 매진한다.
30대 때는 결혼, 출산 등으로 제2의 변화를 맞는다.
“그런데 나는 무얼 위해 이렇게 사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연결되고, 삶의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로와 소명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는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취업바이블 《파라슈트》의 저자 리처드 볼스는 “원하는 직업을 못 찾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무차별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직업의 영역에서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진로와소명연구소 정강욱 대표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 못지않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적 소명이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의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의 직접 고백 형식으로 직업과 소명의 문제를 고민해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글 김경미 사진 도성윤
존재적 소명을 발견하라
대학생 때,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길이 무엇일까?’가 매우 궁금했다. 아니, 궁금함을 넘어 많이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확정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인생을 돌아가지 않고 한방에 빠르고 정확한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고민이 깊어지면서 대학교에서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한 학기 동안 줄기차게 만났다.
선배, 후배 심지어 교수님까지 찾아다녔다. 왜 그 일을 선택했고, 하나님의 어떤 구체적인 응답과 인도하심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원하는 명쾌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방학을 맞아 예수원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주님은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소그룹으로 모여 서로를 위해 중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라는 가장 답을 찾고 싶은 이슈를 그들 앞에서 일부러 나누지 않았다.
내가 말한 것을 기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지 않은 진짜 나의 고민을 기도해준다면 그것은 정말 하나님께로 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차례가 되자 에둘러 다른 이야기만 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처음 만난 한 기도하시는 분의 입에서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아들아 왜 그렇게 힘들어하고 고민하니? 네가 축구할 때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처럼 나하고도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축구동아리를 만들었고 비가 오는 날에도 심지어 시험기간에도 축구는 빠지지 않을 정도로 축구를 즐기고 있었는데, 아니, 그 즐거운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다니 너무 놀라웠다.
사실 하나님은 나에게 왕 같은 분이셨다. 나는 그 왕을 위해 열심히 무언가 해야 하는 종이었다. 언제나 맨 앞줄에서 설교를 들어야 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판단했다.
그런 나에게 다가오신 주님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나는 피 터지게 고민했던 진로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
하나님은 억지로 무슨 일을 시키시는 분이 아니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혼내시는 분이 아니다. 나를 축복하기 원하시고 나와 함께하기 원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셨다.
그분의 자녀라는 존재적 소명이 바로 서자, 직업적 소명에서 진정한 자유를 경험했다. 나는 크리스천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생기면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한다.
“존재적 소명에 응답하면 직업적 소명이 따라옵니다. 소명은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용기 있게 응답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특권적 삶입니다.”
직장인 소명학교를 만들다
2011년 1월 ‘진로와소명연구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함께 일하는 정은진 소장은 친누나이자 내 인생의 멘토다.
어렸을 때부터 누나는 신동,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집안의 기대주였다. 부산대학교에서 상담을 전공한 누나는 가르치는 은사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MBTI 검사를 도입한 심혜숙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며 여러모로 인정받았기에 사실 상담 쪽으로 계속 공부해서 교수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린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누나는 목회자인 형부를 만나 북아프리카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고, 한국에 돌아와 청소년 진로코칭 전문가로 월드비전, 한국교육개발원 등과 협업하며 귀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20대 후반에 LG전자에 최우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화려한 시작과는 달리 사회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신입사원들이 겪는 좌우충돌의 시기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져가도 마음속에 깊은 의문은 더해갔다.
‘이곳이 정말 나에게 맞는 곳일까, 이 일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그러던 중 한 교육을 통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물건을 잘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한국리더십센터와 GS홈쇼핑 인재개발담당자를 거쳐 정은진 소장과 함께 진로와소명연구소를 세우게 되었다.
지금은 각자의 경험과 강점을 살려 이 시대의 직장인, 청년, 청소년들이 인생의 소명과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의미 있는 행복을 누리도록 돕는 여정 가운데 와 있다.
자기의 길을 자신의 속도로
직장인 소명학교를 찾는 이들은 참 다양하다.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오는 이도 있고, 은퇴 이후를 준비하며 본인에게 적합한 방향을 찾기 위해 오는 이도 있다.
또 현재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때문에 오는 이들도 있다.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근무하신 사람부터 중소기업에서 1,2년을 지낸 신참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
이런 직장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 직장인 소명학교다.
경험상 진로와 직업에 대한 고민 상담은 일대일보다 코치의 가이드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며 답을 찾아가는 그룹코칭이 더 효과적이다.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 고유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뿐 아니라 서로를 통해 실제적인 조언들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 대표인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올해 초, 진로와소명연구소 강의 때문에 아르헨티나를 다녀왔다.
나는 아르헨티나로 떠날 때 진로결정에 관한 하나의 기도제목이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진로와 소명연구소를 통해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후원자나 투자자도 없이 시작한 연구소이니 당연히 재정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작년 연말 꽤나 괜찮은 조건을 제시하는 직장을 만났다.
회사에 들어가면 당장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겠지만 연구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 고민스러웠다.
그 고민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믿음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깃발을 꼽아라. 살면서 한번은 주님을 위해 망할 각오를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두 번은 요구하지 않으신다.”
아르헨티나에 같이 갔던 어느 선교사님의 이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이렇게 아직 나도 진로와소명연구소도 진행형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해도 선한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나의 길을 나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진로와 소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현명한 진로 선택을 위해선 자신의 흥미, 강점, 가치, 성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분석을 넘어 부르심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를 권합니다.
이직을 준비하려면 현재 자신이 가진 기술과 능력을 잘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직 (轉職)의 기술을 넘어 내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해석해낼 수 있는 높은 관점을 가지길 바랍니다.
나와 가족을 위한 밥벌이는 정말 신성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밥벌이에 여러분의 소명의식을 더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