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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갓피플 #36]영혼이 담긴 옷을 짓다


종로4가에 가면 양복 좀 까다롭게 고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비앤테일러샵이 있다.
수제 양복점으로 오랫동안 한길을 걸어온 박정열 대표(연동교회)의 장인정신과 같은 길을 걷는 두 아들의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찾는 이들이 많다.
100퍼센트 수작업으로 옷 한 벌을 만들 때마다 각별한 정성과 노력을 담는다. 박 대표가 만든 양복은 착 감기는 맛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 소문 뒤에는 그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기도하며 목회자와 선교사들에게 ‘양복 섬김’을 시작했던 계기가 있었다.
그는 옷을 만들 때마다 한 영혼을 죽기까지 사랑한 예수님을 기억한다. 힘든 순간 들려주셨던 주님의 음성에 순종한 그는 오늘도 한 땀 한 땀 기도로 옷을 만든다.
그의 손길에서 예수님의 섬김이 반짝인다.

글 김경미 사진 도성윤

남자의 인생이 양복이다

어렸을 때, 그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장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만 여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동생까지 죽었다.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말했다.

“참 어렵게 살았습니다.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공부하긴 했지만요.

친척 집에서 머슴살이하며 시골에서 농사 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외숙모가 혼수품으로 들고 오신 가정용 재봉틀이 처음으로 제가 옷을 만들어본 경험이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데 혼자 끙끙대며 바짓단을 접고 꿰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수선한 제 옷을 보더니 엄청 예쁘다고 그러는 겁니다. 옷을 만드는 묘미를 그 때부터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옷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1967년 전북 전주에서 양복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기술은 밥그릇을 빼앗기는 일이었기 때문에 쉽게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다리미가 없었을 때는 직접 숯불 아이론(다리미)를 달구고 식혀 선배들이 원하는 온도를 맞춰가야 했다. 그는 전기다리미가 나왔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누구나 기술을 배우면 독립해서 자신만의 매장을 열기를 꿈꾼다.

2년 후에 서울로 상경해 1980년 양복점을 열었다. 박 대표의 인생에서 단 두 번, 하나님을 보고 그 음성을 들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일생일대의 사건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비앤테일러샵이 시작할 때였다. 5평짜리 점포를 얻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그때 주님이 그에게 명확히 말씀하셨다고 고백한다.

‘여기다’ 하셨던 음성에 순종해 그렇게 자신만의 가게를 열 수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크리스마스에 맛있는 것을 준다고 친구 따라 갔다가 신앙을 가지게 됐다.집안이 불교였고, 먹고사는 것 때문에 꾸준히 신앙생활을 할 순 없었다.

재단사라는 직업이 한 달에 주일도 1,3째주 밖에 쉬지 않았다. 마침 재단사로 일하는 곳의 양복점 사장님이 영락교회 다니는 분이셨다.

그러면서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기도하면서 다시 신앙을 찾았다.

내가 주신 것으로 섬긴다

그가 양복 섬김을 시작한 계기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해진 옷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양복 만드는 것이니 그것으로 좋은 일을 했으면 싶었다.

그가 만든 양복을 입고 행복해하는 목회자의 모습을 볼 때의 감동은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없었다.
그만의 가게를 연 기쁨도 잠시, 기성복이 나오면서 수제 양복점이 사양길로 들어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까지 겹쳤다.

그는 목숨을 내놓는 각오를 하고 가게를 부동산에 내놓았다. 새벽에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 같다.

그때 주님은 명확히 박 대표에게 ‘봉사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순종했다. 그때부터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국민일보 종교부 부장을 찾아가 농어촌 목회자들에게 1달 동안 양복을 맞춰주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시작하자마자 너무 많은 전화가 걸려와 불통이 될 정도였다.

하루에 양복 1벌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20여 벌 넘게 목회자들을 위한 양복을 만들었다.

“옷을 만드는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한달 동안 지켰습니다. 하루에 28벌의 양복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빵과 우유만 먹으면서 온 정성과 노력을 다해 양복을 만들었습니다. 목회자들이 자기 옷에 제 이름을 써서 입고 다니며 기도해주셨습니다.
봉사했더니 주님이 길을 열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양복 150벌을 할 수 있냐는 제안을 했고, KBS 기자가 와서 뉴스까지 나왔습니다.

목회자들을 섬겼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손끝으로 나누는 기쁨

비앤테일러샵은 2대에 걸쳐 젊은 감각과 예전의 손맛을 함께 공유하는 곳이다. 요즘 누가 맞춤양복을 입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입어본 사람들은 안다.

원단부터 바느질까지 사람의 손길을 세밀하게 거치기 때문이다.
한 땀 한 땀 손바느질한 옷은 입는 그 느낌이 다르다.

세상에 나만을 위해 단 한 벌 뿐인 옷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당신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박정열 대표는 내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몸가짐이 달라진다고 했다. 크리스천이라면 옷가짐부터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를 뜻합니다. 그중에 의복이 으뜸입니다. 옷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옷을 입습니까? 옷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남을 위해 입습니다.

사람들이 옷을 잘 입으면 아무렇게나 행동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행동과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옷을 잘 입으면 빛이 나고 얼굴부터 달라 보입니다. 사람의 품위가 달라집니다.

맞춤복은 입는 것이고, 기성복은 걸친다고 표현합니다. 꼭 맞춤옷을 입지 않더라도 멋지게 입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옷을 왜 입는지, 누구를 위해 입는 것인지 명확한 자신의 기준을 말해주었다.

옷은 남을 위해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남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치로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어렵게 배운 자신의 기술을 다음 세대를 위해 가르치고 있는 그의 발걸음이 귀했다.

눈물이 쏙 빠지게 배웠던 기술을 다음 세대들에게 나누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옷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대부분 패션학원에서는 여성의류를 많이 가르칩니다.

남성복을 배우는 사람이 적습니다. 사람들이 저희 옷을 입어보고 좋으니까 일을 배우고 싶다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가르칠 만한 사람을 구별해서 10년 동안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옷이 동일하게 나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느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옷 만드는 일은 정년이 없습니다.

80세가 되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 이 일을 했다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두 아들이 함께 하면서 다음 세대들에게도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옷은 만들수록 재미있습니다.”

17살 때부터 옷을 만드는 길을 걸어온 그에게 마지막으로 옷을 만드는 마음가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옷을 입을 분을 위한 기도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 분이 입는 옷을 통해 그 자리가 빛이 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옷은 저에게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사람마다 똑같은 옷은 없습니다.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원단과 패턴, 바느질 등 삼위일체가 이뤄져야 좋은 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최고의 옷을 꼭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비앤테일러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