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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갓피플 #34]고난 가운데 같이 걷기

지난해 봄, 화장품회사 마누카내추럴 코리아의 홍보대사 신은정 씨를 만났을 때 채송하 대표를 함께 만났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만 보고 평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뷰 하면서 들은 그녀의 삶은 한 편의 소설이었다.

소설 같은 그녀의 이야기는 《하나의 눈물로 핀 꽃》(넥서스크로스 간)으로 출판되었다.

채 대표는 인생에서 가장 싫었던 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왜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배웠다고 고백한다. 고난이 주는 유익에 대해 진지하며 또렷하게 이야기했다.

그녀가 삶에서 원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셨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새겨두신 듯했다.

지금은 다음 세대를 위해 10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끌고 있는 마누카내추럴을 이끌고 있다. 채송하 대표의 삶에서 고난 가운데 주님의 흔적을 엿본다.

그녀는 오늘도 주님과 같이 걸어가는 중이다. 글 김경미 사진 도성윤

인생에서 가장 싫었던 것

가장 비극적인 일은 가족 사이에서 생겨난다. 채송하 대표의 인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필리핀으로 이민을 떠나면서부터다.

아버지 사업 파트너의 사기로 빈털터리가 된 후 엄마가 동경으로 일하러 떠났다. 당시 중학생이던 채 대표는 각국을 돌아다니며 아버지가 시킨 밀수 심부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15살부터 아버지가 시키는 밀수를 강행했다. 마닐라, 홍콩, 동경, 서울, 등의 도시를 다니며 물건과 현금을 날랐다.

오직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동경행 비행기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채 대표는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시도했다.

삶의 안정감과 중심은 예수를 떠나 있으니 ‘사랑할 그 누군가’에게 향했다.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남편의 구타를 견뎌야 했고, 낙태까지 해야 했다.

사는 이유가 없어보였다. 죽는 게 이 모든 고통을 멈추는 길이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죽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거의 숨이 끊어졌는데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죽음을 한 번 겪으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닐라에서 명문대학인 델라살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원서를 냈지만 처음에는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 한국으로 왔다. 오로지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귀국했다.

채 대표는 IT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문턱이 높았다. 직업을 비서로 돌려 독일 BASF 합작 회사의 사장 통역 비서로 발탁됐다.

채 대표는 프라다코리아가 한국에 처음 런칭됐을 때 비서실장으로, 그 이후에는 제일은행 은행장실에서 영국인 부행장의 비서로 발탁됐다.

29살에 그녀는 억대 연봉을 받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길을 걸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행복한 삶인데 그녀에게는 그 시기가 행복하지 않았다.

‘내일 사표 내자 오늘만 참자’ 하며 비서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 회사의 대표가 되고 보니, 하나님께서 예비하지 않았으면 결코 그 일을 할 수 없었겠구나 싶다.

돌아보면 하나님이 그녀에게 맡겨주신 것들이라고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제가 한 회사의 CEO가 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비서가 됐기 때문에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대로 IT분야의 회사를 갔다면 하나님이 원하는 기업의 대표의 그림은 그릴 수조차 없었겠죠.”

하나님을 아는 리더

돈, 성공, 술이 중요했던 그녀의 인생에서 던컨 바커 부행장은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던컨 바커는 사명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 롤모델이자 하나님을 아는 선한 리더였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영국에서 의사였지만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는 부모의 무덤에서 하나님께 서원했다고 한다.

자신이 받은 연봉의 1/3을 사회를 헌신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채 대표에게 매년 변함없이 공의롭고 온유한 리더를 보여주었다.

채 대표는 그에게서 크리스천 리더가 가져야 할 여러 가지 자질을 비서의 자리에서 배웠다.

던컨 바커를 통해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운 것이다.

“돈은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요. 더 큰 곳을 바라보며 사회, 인류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공헌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살아요.”

2000년 당시 부행장의 연봉은 현금으로만 30억이었다.

그는 채 대표에게 비밀을 지켜 달라며 10억에 가까운 돈을 미국 암 연구센터, 아프리카 기아대책 기관 등으로 송금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기밖에 모르고 현실만 생각했던 채 대표에게 엄청난 쇼크를 준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삶의 목적을 고민하며 다시 생각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사명을 깨달아가는 방법

그녀는 지금의 남편인 주민관 목사를 만나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했다.

하나님은 부부에게 뉴질랜드로 가라는 사인을 주셨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사로 삶을 헌신하며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하나님이 생생하게 보게 하신 미래를 꿈꾸게 됐다.

뉴질랜드는 부부에게 사랑만 하며 알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곳이었다.

마누카내추럴을 찾았고, 왜 100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며, 자연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하나님의 풍요로움과 자연 속에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는 소명을 받았던 시간이다.

3년 반 정도 뉴질랜드에 있다가 귀국했다. 다시 비서로 복귀할 것인지, 목회자의 사모로 살아야 하는지를 두고 기도했다.

뉴질랜드의 마누카꿀이 생각났다. 제품 뒤에 적힌 뉴질랜드 회사 홈페이지에 가상으로 만든 사업기획서를 넣었다.

마침 뉴질랜드 본사에서 아시아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마누카내추럴 코리아를 만들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그분의 역사하심으로 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많은 청년들이 꿈을 꾸면서 성공하고 싶어해요. 그러나 ‘돈’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목적과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열어주실 겁니다.

무엇보다 나의 고정관념, 열등감 등 상처를 깨지 않는 한 사명의 길을 온전히 따라가기 힘들어요.

하나님의 소금이 먼저 돼서 훈련받고 희생하면 그때 빛이 되는 거죠.

내가 빛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포기할 때도 물론.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항상 축복이 오는 건 아니에요. 잘 될 것과 되지 않을 2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돼요.

예를 들어 대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삶이 잘 되길 바라죠.

하지만 현실은 혹독해요.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럴 수도 있는 것이죠.

축복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적금 타는 것처럼 오는 게 아니던 걸요. 청년들이 이것만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젊은 시절에 잘 안풀리는 게 90퍼센트 정상이라고요. 실패하며 눈물 흘리는 게 맞아요. 인생에서 고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예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요?

채 대표는 인생에서 싫었던 것들이 오히려 ‘감사’의 고백으로 바뀌었지만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고난은 늘 낯설다.

40대가 된 그녀는 기업을 이끌어가면서 다른 모습을 한 고난과 마주한다고 고백한다. 감당하기 버거운 고난일수록 인내할 때, 선물처럼 축복도 따라온다고 신뢰한다.

순종의 묘미는 축복이 곱하기일 때 여실히 경험하는 듯하다.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 어떤 계획이 있는지 가장 먼저 기도하며 물어야 해요. 내 생각대로 하면 결국 돌아가야 하거든요.

그것 아세요? 하나님의 시나리오에는 실패가 없어요.

당신이 실패해서 절망 가운데 죽고 싶을 때조차도 하나님이 나를 향한 예비하심이 있다는 거예요.

고난을 통해 축복만 간구하는 건 위험해요. 축복은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것이지 본질이 아니랍니다.”

고난을 통해 그녀가 배운 것은 ‘지혜’였다. 고난 없이 지혜도 없다.

내 인생의 풍파는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평탄한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잔잔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태풍이 불면 초토화가 되고 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채 대표. 오히려 풍파 많은 고난이 감사하다. 고난을 통해 훈련되면서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고난이 감사해요. 제가 10대 때 밀수하는 일을 겪지 않았다면 사람을 보는 눈을 잘 키우지 못했을 거예요.

그 당시에 저에게는 밀수를 거부할 선택권이 없었어요. 팔아야 했으니까요.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는데 얼마나 싫었겠어요. 그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느끼고 볼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고난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누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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