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성탄절, 기자는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지금 티브이(KBS)에서 손양원 목사님 일대기를 방송한대요. 완전 감동이니 꼭 보세요. PD(프로듀서)님이 기도하며 제작했다는 후문이 있어요!”라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이런 메시지를 받은 이는 기자뿐이 아니었다.
성탄 며칠 전부터 가뭄에 산불 번지듯, 이 메시지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공영방송사에서 기독교인들에게나 잘 알려진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가 방영된다니, 처음엔 ‘혹시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한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일반 방송이 가톨릭과 불교를 소개하는 데는 관대한 편이어도 개신교, 다시 말해 기독교 자체를 다루는 데는 신중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프로듀서가 (크리스천으로서) 기도하면서 만들었다니, 그 소문의 진위여부와 프로그램 제작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즉 성탄 특집 을 제작하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느꼈을 담당 프로듀서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한가득 궁금증을 안고서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한 KBS의 권혁만 프로듀서를 만났다.
최근까지 ‘추적 60분’, ‘소비자고발’, ‘환경스페셜’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담당해온 그는 방송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고 싶었다는 크리스천이다.
사실 그가 만든 성탄 특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에 회심한 그는 이듬해 성탄절에 시골 교회 목회자가 만든 작은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특집으로 제작했다.
그러니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인데, 반향은 과거에 비해 사뭇 다르고 컸다. 멀게만 느껴졌던 순교자 손양원 목사를 평범한 자신의 삶 가까이에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는 그의 말이 가슴 한편을 울렸다. 글 김경미 사진 도성윤
특집기획으로 방송하기까지
권혁만 PD 본인도 카카오톡으로 기자가 받았던 그 메시지를 세 번이나 받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청률이 어떻게 나왔느냐는 질문에 지상파 종합편성 4채널 가운데 2등이었다고 답했다.
기독교 순교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공영방송에서 성탄절 특집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권 PD는 2012년 8월에 가족들과 함께 여수엑스포를 방문했다.
길을 지나는데 손양원 목사기념관 팻말을 보고 시간이 되면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우연히 방문한 그곳에서 그는 프로듀서의 직감으로 ‘어떻게 이런 사람의 삶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고 방송인으로서 사명감을 느꼈다.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를 통해 성탄절의 의미를 충분히 되짚을 만 하다고 여겼다.
내용은 종교성이 강하지만, 성탄절 특집으로서 인류 최고의 가치로 강조할 수 있는 ‘사랑과 용서’가 손 목사의 삶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기획안을 만들어 회사에 제출할 때부터 그는 기도했다.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방영할 때까지, 과정 가운데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작비가 마련되어야 했고, 좋은 스태프들이 꾸려져야 작품도 잘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이 나간 이후의 시청자 반응까지 기도했다.
기획 단계부터 그의 가족의 긴급기도 우선순위는 이 프로그램뿐이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만들었지만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는 아니었다.
기획안을 제출했을 때가 마침 회사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임원과 간부들의 월급이 반납되어 예산 자체가 없었다. 통과도 못하고 취소도 되지 않은 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권 PD는 이 프로그램은 꼭 KBS 공영방송에서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만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그분이 주신 마음은, 자신이 하는 게 아닌 하나님이 하신다는 작은 믿음이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과 관련해 아무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9월 28일에 손양원 목사의 순교를 기념하는 세미나가 여수에서 열렸다.
권혁만 PD는 (사)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회장 정주채 목사(향상교회)를 만나 프로그램 제작 상황의 어려움을 나누며 기도를 부탁했다.
이어 10월 2일에는 순교 63주기를 맞이한 애양원교회의 일정을 촬영했다. 뜻밖에 (사)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로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제작비 후원을 받았고, 10월 20일 회사의 최종 방영 결정이 났다.
그가 상황만 보고 낙심했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신앙과 삶의 그릇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것
권 PD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누구나 손 목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없는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분으로 느끼게 하려는 것이 프로그램 기획의 의도였다.
자신 스스로 그런 하나님을 느꼈고, 인간적으로는 손양원 목사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권혁만 PD가 만난 손 목사는 한순간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벗어나지 않은 분이었다.
일상의 작은 것 하나부터 가장 큰 문제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 손 목사의 삶이었다.
손양원 목사는 하나님이 뜻하는 길을 선택할 때마다 세상과의 타협이나 양보는 없었다.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기까지 24시간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일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겠느냐고 그는 되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대에 더욱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손양원 목사의 삶을 우상화시킬 필요도 없고, 나와 관계없다고 미리 겁낼 필요도 없다. 각자의 신앙과 삶의 그릇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가 비록 손 목사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살다보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칭찬을 받지 않을까? 각자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복음의 향기를 전하는 프로듀서의 길
1990년에 KBS에 입사하고 어느새 25년이 지났다. 그가 대화 가운데 흥분한 대목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느냐는 부분이었다.
1997년 3월, 지방 방송국에서 일하다 서울로 발령을 받아 ‘VJ 특공대’의 전신인 ‘특종 비디오 저널’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그해 6월 경,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진탕 술을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길바닥에 누워버렸다.
‘죽고 싶다’고 문제메시지를 보내자 아내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일단 집으로 오라고 했다. 술에 취해 들어온 그의 얼굴에서 아내는 두려움을 느꼈다.
잠든 그를 붙잡고 기도한 후 다시 바라보니 이제는 아기 같은 얼굴, 천사의 얼굴이 보였다. 다음날 일어난 권 PD는 아내에게 이제는 교회에 가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 전에는 교회 문턱을 밟으며 다니는 척만 했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내의 기도가 이성의 영역이 강한 그가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계기였다.
예배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며 6개월가량 성경공부를 하면서 가치관이 바뀌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 하는 방송 현장에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 복음적으로 변화되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도하심을 삶의 곳곳에서 많이 경험했다.
그 하나의 사건이 1998년 그가 처음 성탄절 특집을 만든 일이었다.
시골에서 한 목회자가 지역의 주민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며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공연을 한 따뜻한 이야기 가 문화프로그램에서 전파를 탔다.
일회성으로 끝났을 그 방송을 우연히 보게된 어느 외부인사가 kbs사장에게 프로그램 내용을 격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두달 후 성탄특집으로 재탄생되었다.
성탄 특집으로 나간 그 다큐멘터리로 프로그램 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권 PD는 자신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조금씩 더 구체화시켜가고 있었다.
사명을 고민하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부르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그를 프로듀서로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씩 제 삶에 선명해지는 하나님의 뜻을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점점 더 만들게 되지 않을까요. 세상 문화를 이길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미칠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다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가 한번의 반향으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아쉬운 점이, 모든 내용을 50분 안에 담아야 하니까 넣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거든요.
다큐멘터리 영화로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