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다산(多産)의 여왕(女王) 김지선을 만나는 일은 5월이라 가정의 달에 제법 어울리고도 5월 강변에 설 때처럼 상쾌한 경험이다.
그녀가 말할 때면 신기하게도 웃음주머니가 매번 터지며, 과수원을 지나온 바람이 산들거릴 때 풍기는 그 달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 물올라 연푸른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 달린 사과나무를 보는 좋은 기분이란 이럴 때 드는 것이다.
1972년생인 개그우먼 김지선은 김현민 씨와 결혼, 큰아들 지훈과 둘째 정훈을 연년생으로, 그리고 2년 터울로 셋째 성훈과 막내딸 혜선까지 모두 3남 1녀를 낳았다.
그녀는 하늘이 내린 희극인답게 “(남편과) 스치기만 해도 아이가 들어서서 결혼 후 8년간 배 꺼질 날 거의 없었다”는 너스레를 천연스레 떤다.
자녀 네 명을 낳은 연예계 다산 여왕에는 김지선 말고도 배우 정혜영과 가수 김혜연 등이 있는데, 그녀의 선배 이성미는 최근 어느 방송의 간증 프로그램에 김지선이 출연했을 때 “네가 하나 더 낳아서 개그맨들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에 다른 사회자가 “선배 말대로 한 명 더 낳을 생각이 있는가?” 묻자 그 즉시 “하나님이 또 주시면”이라고 역시나 유쾌하게 답을 해 웃음을 터뜨렸다. 천상 개그맨이다.
김지선은 나이로는 아직 십대이던 1990년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재학시절에 제1회 KBS 코미디탤런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화려하게 데뷔, 북한 출신 귀순 여배우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그럴싸한 평양 사투리 구사 실력에 ‘꽃봉오리 예술단’ 같은 개그로 한 시절을 풍미했다.
그리고 연예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흔치 않은 4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요즘에는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이며 한층 더 멋진 전성기를 보내는 중이다.
최근엔 연예인 연합예배의 합창단원으로, 청소년 멘토링 전문 사회복지 NGO ‘러빙핸즈’의 홍보대사 겸 초록리본도서관의 공동대표로도 섬기고 있다.
사람을 웃도록 하는 개그감각도 여전하지만, 대중이 그녀 덕에 깊이 기쁘고 더 활짝 웃게 되는 웃음 포인트는 다름 아니라, 밝고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행복의 이유를 물으니 답은 간단했다.
네 아이의 엄마이면서 늘 바쁜 방송인으로 살아가지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그녀의 삶에 기둥이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바람을 담아 5월의 햇살 같은 김지선을 기분 좋게 만났다.
글 이한민 사진 도성윤러빙핸즈 홍보대사가 되고 이 단체가 운영하는 초록리본도서관 공동대표가 되셨군요.
초록리본도서관은 러빙핸즈가 1018(열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의 십대) 세대를 위해 운영하는 대안공간이에요.
서울 마포구 동교로에 있고요, 유명인을 초청해 ‘김지선 아줌마와 함께 책읽기’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하죠.
러빙핸즈의 모토는 제가 성장기 때나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느꼈던 바이기도 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물질적인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멘토링이 필요하다는 건데, 이 단체가 그런 일을 하거든요.
그런 아이들이 느끼는 가장 힘든 점은 힘든 점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에요.
자라면서 가지는 고민이 나만 가진 고민인지 누구나 하는 정상적인 것인지, 아니면 나만 이상한 건지 알아볼 상대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멘토를 한명씩 붙여줘서 그 아이가 좋은 가치관을 가지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겁니다.
누구나 물질로는 가끔 도와줄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고 바라는 마음의 양식을 주고 마음이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러빙핸즈의 모토가 공감이 됐던 겁니다.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어떤 겁니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봉사를 함으로 해서 그 봉사를 받는 분들이 채워진다기보다는 오히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채워지는 것 같아요.
간혹 내가 저 사람들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도 있고요. 또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요.
그래서 굳이 그걸 봉사라고 하기보다는 서로 나누면서 같이 행복해지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군요. 남편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제가 둘째이고 위에 오빠 있고 밑으로 여동생에 막내로 남동생이 있거든요. 남편은 제 여동생과 시누이가 원래 회사 친구여서 너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어요.
사실, 자연스럽지는 않았지요. 둘 다 7년 동안 알고 지내면서 저희는 7년 만에 소개시켜줬으니까.
또 자기들은 먼저 시집갔었고 아이까지 낳은 상태에서 혼자 있는 오빠와 언니가 짝도 못 찾고 있고, 불쌍해 보였나 봐요.
그래서 둘 다 영화 좋아하니까 만나서 영화나 같이 보라고 소개시켜줬는데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됐네요.
아이들은 언제 어떻게, 넷까지 낳게 되셨습니까?
첫째는 2004년에 났고요 둘째는 2005년, 셋째가 2007년, 넷째가 2009년에 났어요. 연년생이거나 2년 터울로 낳았기 때문에 정말 배 꺼질 날 없이 그렇게…. 정말 열심히 살았었지요.
전 사실 이렇게 많이 낳을 생각은 없었어요. 제 친정어머니도 넷을 낳으신 거잖아요. 어렸을 때 전 형제 많은 것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집이 넉넉하지 못하니까 항상 먹을 게 부족했고 입는 게 만족스럽지 못하고 갖는 게 적다 보니까, 나중에 나는 아이 낳더라도 좀 적게 낳으리라 생각했는데, 성장해서 주위를 보니까 형제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오히려 덕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좋은 일을 겪을 때는 모르는데 살다보면 안 좋은 일 닥칠 때 있잖아요.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라 고난도 어려움도 시련도 다가오곤 하는데, 그럴 때 형제자매가 많으면 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다는 자체가 살면서 참 큰 힘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좀 나이 들어서 결혼했잖아요.
서른세 살에, 요즘엔 흔하다지만 저때만 해도 늦은 편이었어요. 좀 철들고 나서 결혼한 거니까, 그래선지 아이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유산보다 형제를 물려주는 게 더 큰 유산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셋까지는 예상을 했는데 하나 더 주시더라고요.
살림만 하는 분이 아닌데, 자녀양육에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제 욕심으로는 아이들에게 형제를 많이 주는 게 좋은 유산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아이들에게 단점일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이 별로 없이 낳다보니까 충분히 안아주지 못하고 엄마 사랑을 다 쏟아주지 못했던 게 제일 미안해요. 밖에서 일하고 들어오면 아무래도 막내를 더 보듬게 되죠.
젖도 먹여야 하니까. 그럼 아직 어리면서도 젖 땐 아이는 한참 예쁜 짓하고 엄마 품에 더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까, 친정엄마가 그런 애 보고 “아이고 불쌍해라” 맨날 그러셨거든요.
그때는 제 속을 후벼 파는 소리 같아 듣기 싫었는데 세월 지나고 보니까 그게 확실히 제일 미안한 부분이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지선 씨를 칭찬하고 부러워하지만 여러 이유로 다 그렇게 살지는 못합니다.
요즘 젊은 분들이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이유로, 또 사실 낳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제가 이름난 연예인이니까 솔직히 말해 경제적으로 직장 다니시는 분들보다야 여유는 좀 더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돈으로만 다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부잣집 아이라고 아프지 않는 경우 없잖아요.
저도 아이 키워보니까 아무리 도와주는 분이 있어도 엄마가 해줘야 하는 부분은 따로 있는 것이더군요. 제가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의 짐을 가지고서 사는 건 아마 많이 모르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아이를 가지고 나서 일이 더 잘 풀린 경우에요. 다산이 방송에서 소재가 되어서도 그랬을 수 있고요.
제가 개그맨이면서 여자로서 방송에서 약간 섹시한 이미지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다둥이 엄마로서 국민 며느리와 같은 닉네임을 갖게 되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여자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아 보이셨던 것 같고, 또 요즘은 많은 프로그램들이 연예인의 실생활 속에서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원하는 데가 많거든요.
말하자면 연예인들도 사람이고 사는 것은 똑같구나 느끼도록 해주고, 애 때문에 울고 시어머니 때문에 속상해하는 모습들이 많이 비춰지면서, 그래서 특히 저는 아이를 많이 낳은 뒤에 더 잘 풀린 경우가 됐죠.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요, 아이가 많든 적든 아이 각자가 주는 즐거움이라는 건 어떤 보석이나 물질적인 것하고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값지다는 걸 느껴요.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이라는 게 각각 다 달라서, 왜 자녀가 하늘이 주신 보물이고 선물인지를 제가 키우면서 느꼈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경제 형편상 많이 못 낳는 분들은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테지만, 분명히 그 아이를 주신 하늘의 뜻이 있을 거예요. 엄마들이 나중에 다들 그러잖아요.
‘얘 안 낳았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 이야기하시는데 정말 그래요. 이 아이들을 안 낳았으면 어떻게 할 뻔 했나 하는 감사함이 오더라고요.
아이를 많이 낳은 지선 씨는 나름대로 성경적인 기준이나 받은 말씀 같은 것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뭐 이걸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정도는 아니고요,
저한테 왜 다른 사람보다 많은 넷이라는 아이를 주셨을까 생각해봤더니, 지금까지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제가 너무나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좀 많이 이기적이고 배타적이고, 뭐랄까 저만 알고 살아왔는데, 그걸 내려놓게 하시더라고요.
아이는 생긴 만큼 자신을 버려야만 그 아이를 돌볼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의 자기애(self love)를 많이 버리게 하셨어요.
또 제가 원래 완벽주의이다 보니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지 못할 때 속상한 적이 많았어요. 큰애가 좀 약해서 계속 토하고 잘 먹지 않을 때 제가 막 울었더니 교회 다니는 선배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하나님의 자녀를 왜 네 거라고 생각하니? 하나님이 잠시 너한테 맡겨두신 거야. 네가 왜 그 아이 기르고 먹이고 입히는 것에 대해 그렇게 속상해 하니? 하나님이 주신 자녀, 하나님이 키우셔.
걱정하지 말고 너무 울지도 말고, 너는 그냥 그 아이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기본만 잘해.”
이 말 들으니 너무 편해지는 거예요. 그래, 얘는 내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키우면 안 돼.
만약 제가 하나님 믿지 않고 이 아이들을 키웠다면 얼마나 더 많은 눈물과 자기비판과 속상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수님은 언제부터 믿으셨습니까?
초등학교 때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그리고 중고등학생 때 공부도 힘드니까 저절로 주님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땐 부모님도 맞벌이를 하시고 어머니가 발에 굳은살이 늘 생길 정도로 어렵게 사셨는데, 여느 집들처럼 첫째나 막내는 돌보시지만 중간은 신경을 많이 못 써주셨거든요.
저도 어딘가 기댈 데가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대학 들어가 바로 개그맨이 되면서 사는 데 숨통은 트였지만, 무대 뒤의 공허함이 너무 크더라고요.
완벽주의 성격이라 자신을 너무 미워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그래서 개그맨 된 뒤에 본격적으로 주님을 더 만나려 했던 것 같아요.
최근 기도와 신앙생활에 더 뜨거워지신 듯합니다. 계기가 있었다면?
이성미 선배님이 기독연예인 연합예배 오라고 문자를 자주 보내셨어요. 그 무렵이 마침 아이 넷 낳고 일은 잘 안 되고, 아이까지 아프니까 우울증이 생겨 힘들었거든요.
연예인이라는 게 인기 좋을 때는 떨어질까 염려하고 떨어지면 언제 다시 올라갈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에요.
저도 그렇게 마음이 힘들었을 때, 복음학교 김용의 선교사님이 그 예배에서 말씀을 전해주시더라고요.
저도 나름 자라면서 어려웠고 지금 사는 삶도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었는데, 그 분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삶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 복음을 붙잡고 사시더라고요.
저 그날 꺽꺽대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복음 안에서 치유 받았지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느낀 거예요.
가진 게 이렇게 많은데 왜 나는 없는 걸 가지려고 힘들어했을까, 그거 없다고 투정부리고 속상해 하고 좌절했을까?
저를 봤더니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거예요.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이 없었던 거죠. 요즘엔 김남국 목사님 말씀을 듣는데 정말 화끈하게 말씀해주시니까 팍팍 찔려요.
가정의 달을 맞아 나누고 싶은 이야기와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
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자리인지라 저희 가정의 이야기만 한 것 같아 몹시 죄송한데요, 그제 정말 아픈 일(세월호 침몰 사건)이 있었잖아요.
항상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가족을 갑자기 못 만나게 된 것이잖아요. 얼마나 안타까워요. 우리가 그렇게 소중한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못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인터뷰 하기 전에도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항상 건강하시라고 문자를 보냈는데요, 어떻게 해서라도 가족끼리는 사랑하고 고맙다는 걸 자주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가족 아니라도 우리 주변엔 손 한번 잡아주고 안아주기를 기다려온 사람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잊고 살던 친구라든가 오래 전 지인이라도 다시 연락도 해보고 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젊은 어머니들 아이 기르면서 많이 힘드시잖아요. 그럴 때 남편들이 좀 더 자상하게 말 들어주고 작은 일이라도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제 남편이 하는 일이 있으면서도 더 바쁜 저 대신에 아이들 병원 데리고 다니고 그래서 아내 덕에 일 안 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요, 제가 고맙게도 자상한 남편 덕을 많이 보고 힘을 얻었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마음에 안 들어 남편 대신 현관의 남편 신발 걷어찬 적도 있었지만(웃음).
제가 더 신실하게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고요, 사실 저만 지금 집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저부터 더 변화돼서 남편도 부모님들도 주님을 영접해서 같이 예배드리는 가정이 되는 것이 가장 큰 기도제목입니다.
저의 네 아이들, 어디 데리고 가려고 차에 태울 때마다 항상 기도하고 출발하는데요, 이 아이들이 주님의 자녀로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누리고 사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