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잃어버린 자”(눅 19:10)였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잃어버린 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세리는 죄인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 달랐다. 삭개오와 대화를 나누신 후에 주님은 자신의 행하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삭개오에 대한 온갖 나쁜 평판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명을 이루셔야 했기에 그의 집으로 들어가셨다.
삭개오는 주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주님이 삭개오를 개인적으로 대하신 일을 통해 그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내가 갖겠다’라는 철학으로 살았지만, 그 후로는 ‘내가 주겠다’라는 철학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탐욕에 지배당하는 사람이었지만, 주님을 만난 후에는 은혜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으로서 주님을 만났지만, 의(義)에 사로잡힌 사람으로서 주님을 영접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눅 19:9).
삭개오의 경우, 은혜로 생긴 영적 변화가 그에게 도덕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그렇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 주님이 오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사명이었고, 또 지금도 그분의 사명이다. 주님이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가셔서 그의 깨어진 심령에 손을 대셨을 때, 그것은 회복된 영혼의 음악에 맞춰 전율했다.
그리스도의 사명의 모든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단어는 바로 ‘구원’이라는 단어이다. 주님은 ‘구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자들’이 ‘구원에서 가장 가까운 자들’로 변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구원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구원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하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사명이다.
구원은 잃어버린 자 삭개오에게 찾아와 그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실현된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