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여름, 나는 전투에 처음 참가하는 초년병 같은 모습으로 아프리카 케냐에 도착했다. 어느 날, 내가 사역하고 있는 난민촌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교회에 다니는 한 여 성도가 돌도 안 된 갓난아기를 데려왔다.
아기의 머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면서 괜찮은지를 물었다. 아기의 머리에는 뭔가에 긁힌 상처가 있었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흔히 바르는 연고 정도만 발라도 될 것 같아서 큰 문제는 아니라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 다음부터 몇 주간 그녀는 예배에 나오지 않았다. 심방을 하려고 골목을 지나 어렵게 찾아가보니,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한 곳이었다. 내가 왜 교회에 나오지 않았는지를 묻자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얼마 전 내게 데리고 왔던 아기가 결국 주님 곁으로 갔다고.
“네? 뭐라고요?” 잘못 들었는가 싶어 다시 물었다. 그녀는 아기 머리에 났던 상처에 균이 들어가 합병증이 생겨 며칠을 시름시름 않다가 결국 죽었다고 말했다.
믿고 싶지 않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고 말문이 막혔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동도 할 수 없었다. 머리에 살짝 긁힌 상처로 한 생명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는 게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소독이라도 했더라면, 아기를 붙들고 간절히 치료를 간구했더라면, 내 주머니에 있는 몇 푼이라도 아기의 치료를 위해 쓰라고 주었더라면….’
순식간에 수만 가지 생각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앞에 놓인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몇 분이 흘렀을까….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 집에서 나왔다.
내 머리는 캄캄한 암흑으로 가득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수만 가지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서 그 아기를 내가 죽였다는 죄책감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한 생명이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부모를 만나서, 가난하고 무지한 선교사를 만나서 생명을 꽃피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다 내 잘못이야. 재정도, 아는 것도, 경험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이곳에 올 자격이 없어. 더 준비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가진 사람이 와야 하는 곳인데….’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사역하는 그 땅의 사람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주에 나는 난민촌의 교회가 가지 않았다. 다음 주도 가지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성도들을 볼 수가 없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두 주나 교회에 가지 않자 교회의 한 리더가 내가 사는 기숙사로 찾아왔다. 그러고는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이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더는 내 말에 그다지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그런데 갈 때 가시더라도 성도들에게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리더가 가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수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가서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요일 아침,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난민촌은 발 디딜 곳 없는 시궁창같이 되어버린다.
‘뭐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지? 무슨 이유를 대고 다시 돌아간다고 하지?’ 이런 저런 핑계를 생각해봤지만 그 무엇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 마치 패잔병이 지친 몸을 간신히 이끌고 도망가는 느낌이다.
버스에서 내려 난민촌을 걸었다. ‘이제 이 길도 마지막으로 걷는 것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얼마를 걸었을까. 난민촌의 아랫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 비에 젖을까 비닐 포장도 없는 빵을 가슴에 품고 뛰어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 이제 이 광경도 영원히 보지 못하겠구나….’ 잠깐 멈추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뺨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땅에 소망이 있니?’ 갑자기 내 마음 속에 ‘소망’이란 단어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다시 이런 소리가 더 크게 내 마음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땅에 소망이 있다. 나는 이 땅에 소망이 있다.’ 두 번이나 내 마음을 때리듯 흔들어 놓았다.
‘이 땅에… 소망이… 있다고?’ 나는 한참을 그렇게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주께서 이 땅에 소망이 있다고 하시는구나.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오직 주님만 소망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또 소리가 들렸다. ‘네게도 이 땅을 향한 소망이 있니?’ 순간,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소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 내리는 난민촌 한복판에서 나는 하나님을 보고, 나를 봤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아버지의 소망’을 보았다.
나는 떠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 말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 예레미야 1장 7~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누가복음 4장 18,19절
† 기도
주님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게 하소서. 소망되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 전하기에 힘쓰겠습니다. 주님, 더욱 사랑하고 더욱 섬기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이 소망을 품어야할 곳은 어디입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고 복음전하기로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