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님이 이루신 완전한 사역은 내 안에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는 우리의 죄, 저주, 질병, 가난, 마귀의 묶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에게 어떻게 죄와 질병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구원이 곧 현재의 모든 죄, 저주, 질병, 가난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이 우리 안에서 법적으로는 이루어졌지만(즉, 영혼육 전부 구원받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현재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우리가 하나님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통치하시는 그날,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도래했지만, 아직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완전한 역사가 영적세계에서는 다 이루어졌지만, 아직 이 땅에 완전히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 땅에 도래한 현재적 하나님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가 땅끝까지 전해지도록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은 마치 구약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3)
이 말씀은 약속은 이미 (과거에) 주어졌지만, 지금 우리가 (현재로부터 미래로)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적 하나님나라의 개념은 신학적으로 ‘already but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이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도록 ‘D-day’와 ‘V-day’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했을 때 이미 전쟁에 승리했지만(D-day), 실질적으로 전쟁이 끝난 것은 1년이 지난 이후였다(V-day). 독일군은 이미 패했지만 아직 숨어서 도망 다니며 저항했고, 연합군이 그들을 완전히 소탕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가지 비유를 더 들어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 집을 사기 위해 대금을 치르고 쌍방간 계약서에 서명했다면, 이제 그 집은 법적으로는 자신의 집이 되었다. 그러나 계약서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자신이 그 집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는 이미 그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적 하나님나라의 속성은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이미 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이 땅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야 한다(아직 현실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지금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은혜의 시대이지만, 여전히 영적전쟁을 벌이는 상태이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미 이긴 전쟁이지만 전투를 통하여 쟁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이 앞으로 이루실 일이 아니라 이미 다 이루신 일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나타내는 비밀이다.
앞의 비유를 다시 생각해보자. 당신이 구입한 집에 악한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계약서를 들고 가서 “이 집은 내 집이 될 것입니다. 나가주세요”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집은 이미 내 집입니다. 나가주세요”라고 할 것인가? 다른 말로 물어보자면, 당신 몸에 악한 영(질병)이 거하고 있을 때, 당신은 “주님이 이미 나를 치유하셨습니다”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주님이 나를 치유해주실 것입니다”라고 할 것인가?
지금 치유되지 않았는데 치유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 아닌가? 물론이다. 우리가 합리적, 과학적, 논리적, 이성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현실세계에 국한된 것들에만 적용된다. 그러나 성경의 새 언약의 말씀은 현실세계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에 제한된 현실세계와 이성의 논리를 벗어난 것이다. 사고의 주체가 자기 자신일 때는 현실세계에 국한된 의식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에 사로잡히면 현실세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영적세계에 접속된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하나님 자녀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하늘(영적세계)에서 이루어진 것을 믿음으로 말할 때, 그 말한 대로 이 땅(현실세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치유는 2천 년 전에 이미 일어났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죄로 인하여 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일을 이미 회복시키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 은혜의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법을 말하고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치유되었다고 담대하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믿음으로 선포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모두가 치유를 받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치유사역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모든 사람을 치유할 것처럼 사람들을 속인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질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된 것을 선포할 때는 더더욱 그렇게들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을 속이고자 하거나, 나 자신을 높이려거나, 더욱이 나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고자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도래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믿음은 이 땅의 현실에 기초한 이성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아직 완전치 않지만(already but not yet)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는 자에게는 당연한 사고방식이다.
스스로 기도하고 선포했을 때 또는 치유사역자가 선포하고 기도했을지라도 아무런 변화도 치유도 일어나지 않을 때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 치유사역자가 사람을 속인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집회가 엉터리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믿음이 없구나’라고 자책하는가?
그 어느 것도 옳지 않다. 나 역시 내가 기도할 때 기도 받는 사람이 치유 받을지 또는 받지 못할지 다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말씀대로 기도하며 선포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 말씀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장 23,24절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고린도후서 5장 2절
† 기도
주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해 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일을 제 안에서 이미 회복시키셨음을 믿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현실세계에 국한되어 살고 있는 저를 성령으로 온전히 사로잡아주셔서 늘 영적세계에 접속하여 살게 하시고,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선포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구원을 받은 당신은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법을 적용하며 살기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의 통치가 전해지는 삶을 살기로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