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약함을 알기는 어려워도 남의 약함을 알기는 쉽다. 특별히 가족들의 약함을 알기는 정말 쉽다. 늘 같이 살면서 약함이 흘러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함이 반드시 가정의 어느 부분을 붙잡고 분위기를 결정하는 영역이 있다.
가정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모든 것이다. 서로의 연약함이 관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 안에서 서로의 장점 때문에 즐거운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은 가정이 각자의 역량을 따라 일을 하는 직장과 달리 서로의 관계를 통하여 사랑하는 관계 중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녀가 가정을 이룰 때 서로의 장점을 보고 만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연약함을 알고 그 연약함을 감당할 수 있다면 좋은 부부가 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가망이 높아진다. 누가 그렇게 선택하겠는가마는….
사람들은 장점을 따라 사람을 고르고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약점 때문에 서로 괴로워하고 헤어진다. 가정은 강점 때문에 결과물을 내놓는 곳이 아니다. 도리어 약점 때문에 괴로워질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가정은 잘해야 본전인 곳이다. 가정이 평안하고 자식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라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지만 열심히 해도 누가 알아주는 일은 아니다.
세상에서 한 개인을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항목은 그의 능력과 장점이다. 그러나 뛰어난 가정을 평가하는 항목은 서로의 연약함을 감싸고 돌볼 수 있는 무던한 마음이다.
나의 경우에는 가정을 위해 네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요구 받기까지 했다. 아직 내 안에 원망이 정리도 되기 전에 적절한 행동을 요구 받을 때의 난처함이 있다. 상처 받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늘 명절이면 집에 가기가 싫었다. 명절이라고 잘 모이지도 않았지만 혹 모여도 결국은 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과 명절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해 바로 위의 형의 강력한 권유로 광주에 내려갔다. 가기 전에 기도를 많이 했다.
광주에 내려갔는데 긴장과 스릴이 넘친다. 모두가 식사를 한 후에 형수님이 말한다.
“밥은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어머니가 하세요.”
순간 분위기가 얼음이 된다. 여기서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반드시 술 먹고 싸울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선다.
“밥은 형수님이 하셨으니까 설거지는 남자들이 합시다.”
내가 하고, 다음에는 형이 한 번 하고, 결혼한 조카가 한 번 하고, 돌아오기 전 내가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무사히 귀가했다.
내가 은혜 받았다고 가족들의 연약함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작은 통로가 될 뿐이다. 정 안 되면 피하고, 도울 수 있으면 판단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보지 말고 진심으로 마음을 일으켜서 도와야 한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평생 원망만 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람이 할 일이 절대 아니다. 용서가 무엇인가?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은혜 받았다고 오버해서도 안 된다.
예수님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자신이 하고자 하면 반드시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 아무리 은혜 받아도 가족에게는 잘 안 통한다. 그냥 나의 변화가 가족들에게 감지되고 작은 섬김이 분위기를 조금 완화시킬 수 있음을 알고 감사하면 된다.
- 창세기 39장 2절,3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전서 13장 4절,5절